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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스님의 함창 고녕가야 이야기]11, 물따라 별따라

고녕가야 역사를 찾는 것이 우리 고장이 도약하고 지향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다.

기사입력 2021-03-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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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야역사 복원사업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이 자리에 함창읍과 함령김씨를 대신해서 김희근 함창고 교장 일행이 참석했다고 한다.

 

김희근 교장은 단상의 교수단을 향해 가야역사 복원사업에서 함창고녕가야를 제외하고 무엇을 복원하겠다는 말이냐고 항의하였다. 이에 단상에서는 그 먼 함창까지 가야연맹이 있었을 리 없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발언을 제지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사서(史書)에 한 번도 아니고 열 번 이상 등재되어 있는 함창의 고녕가야역사를 외면하고 일본서기에 등재되어 있는 대세, 기문, 탁국 등을 찾아내어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하니 심히 우려할 일이다.

 

경북대학교에서 역사교수로 30년 재직한 허흥식교수, 이양희 함창읍장, 권창희 흥농석재사장, 김용길 전 점촌중학교장, 박호남 한국공연예술원장 등 여덟 명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희근 교장의 탄식섞인 일성이었다.

 

 

착찹한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은 별자리 공부를 위해 고녕가야의 권역인 낙동강과 이어진 금천(錦川)으로 발길을 옮겼다. 금천 별자리 안내는 구곡보존회장이자 향토사학가인 이만유회장이 맡아주기로 했다. 보름 전에 연락해서 뜻깊은 향토문화를 대외에 소개하는데 수고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먼저 용궁면 금남리 조대(釣臺)에 차를 세워두고 금천을 건너 100미터 전방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을 향했다. 전에도 두어 번 와 보았지만 고인돌인지 아니면 재단석인지 의심하면서 돌아간 적이 있다.

 

이만유 회장의 안내로 바위에 다가서보니 희미하게 삼태성이 새겨져 있다. 허흥식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50여 미터 옆에 있는 길이 10미터 넓이 3미터 높이 3미터 정도 크기의 바위에 올라갔다.

 

 

논바닥에 우뚝 솟아 있어서 당겨주고 밀어주면서 바위에 5명이 올라서니 수많은 별들이 새겨져 있다. 얕은것 깊은것 합하여 30여개가 신비롭게 각인되어 있다. 이 바위의 용도가 재단으로써 재천행사를 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아니면 기자신앙으로 아들의 점지를 바라거나 하늘의 가호를 바라는 고대인들의 희구가 이러한 별 형상을 그렸을 것이라는 허흥식 교수의 설명이다.

 

다시 두 대의 승용차를 몰고 산양면소재지 강변에 도착했다. 앞산정상에 가면 큰 바위에 북두칠성과 북극성 등이 선명하지만 시간이 제법 걸리므로 그곳은 다음으로 미루자고 한다. 대신 강변에 내려가니 기대한 대로 거대한 암석이 나오고 그 위에 북두칠성 등 여러 별들이 선명하게 각인되어있다. 어린시절 이 바위에 올라가서 물에 뛰어들기도 했다면서 이만유 회장은 설명과 함께 과거를 회상했다.

 

성혈석 뒤로 신작로를 개설하면서 암소머리에 해당되는 암반부위를 폭파한 뒤로 이 고장에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시 차를 몰고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녹문리로 향했다. 여러 번 와본 적이 있는 녹문리 남파정()에 차를 세웠다.

 

옛날에는 정자 주위로 해자를 파서 물길이 흘렀으며 둘레에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아담한 정자였다고 한다. 지금 정자는 무너지고 소나무는 잡목에 가리어 기진맥진하고 해자의 수로는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이만유 회장을 따라 정자자리 바위에 올라 마른 덩굴을 걷어내니 수십 개의 구멍돌이 얼굴을 드러냈다. 정자를 짓고 뜯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는지 아니면 농지를 넓히려고 중장비로 옮겨놓았는지 다소 무질서하게 구멍돌이 엉켜있다. 덩굴을 헤치면서 구멍을 헤아려보니 족히 100여개나 되는 은하수 별이 쏟아지는 듯하다. 이러한 구멍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이만유회장처럼 애향심 있는 분들이 있었기에 장엄한 모습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남파정에서 100여 미터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북파정()에 도보로 도착했다. 북파정 옆에는 돌출된 암반 위에 까만 이끼를 덮어쓰고 모양도 일정하게 50여개의 구멍이 노출되어있다. 주위 바위가 가로세로 각기 30미터는 될 것 같은데 여러 군데 다양한 형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금천의 강줄기 따라 바위가 있고 정자가 있고 그 속에 수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돌구멍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새긴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우리와는 어떤 관계였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들딸 많이 낳아 자손 번성하고 물질의 풍요만을 염원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내세를 기약하면서 저 하늘의 은하수를 건너 북두칠성을 사다리 삼아 북극성으로 올라가고자 기원했을까?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널판에 칠성별을 그려 넣는 것과 이들 바위에 새겨놓은 별자리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희미한 감상을 떠올리면서 다시 차를 몰고 300미터 북쪽에 있는 현리의 경체정() 옆에 주차했다. 경체정은 인천채()씨 채성구 7형제의 우의를 기리기 위해 지었으며 그러한 뜻으로 시경(詩經)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0여 평이 못되는 암반위에는 북두칠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별 형상이 새겨져있다.

 

허흥식 교수는 흥분한 음성으로 신기한 듯 말을 이어간다. 이렇게 별자리 암반들이 강을 따라 집단으로 있는 곳은 역사학자로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라 한다. 경체정 바위에서 보이는 강 가운데 있는 형제바위에도 성혈이 여럿 새겨져 있다고 하지만 물속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신 70미터쯤 북쪽 강가 마른풀더미에 덮여있는 바위를 안내받아 자리를 옮겼다. 마른 덩굴을 걷어내고 살펴보니 올망졸망한 구멍들이 40여개가 곰보 얼굴같은 형태로 바위위에 새겨져 있다.

 

이제는 흥분도 가라앉은 상태라 조용히 머리를 들고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불산, 운달산, 숫돌산, 천주산이 병풍처럼 멀리 올려다 보이고 금천강물이 길게 이어진다. 경천댐 건설로 수량은 많이 줄었지만 태고의 하천은 지금도 다양한 물고기를 키우면서 산양들을 적시면서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선사시대의 성혈석이 강을 따라 새겨져 있고 천년의 고찰들이 늘어서 있다. 그 아래 5백년 성리학의 유산인 정자와 서원들이 강과 산을 의지해 현존하니 구곡문화가 숨쉬고 있다. 아직 연소리 연못성혈을 비롯하여 답사 못한 곳이 여럿 있지만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어 오늘 별자리일정은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별따라~ 물따라~ 정자따라~ 사찰따라~ 역사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금천이 아니고 그 어디서 찾을손가? 이제부터 금천은 문경의 고국(古國)인 고녕가야의 한 지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계곡에 처박히고 들판에 묻혀 숨막히는 고녕가야 역사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 없는 허구도 있는 사실로 둔갑시켜 역사를 만드는 시대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역사를 발로 짓뭉개려는 망동은 멈춰야한다.

 

이것은 그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니라 이 땅에 발을 딛고 터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나서서 할 일이다. 금천의 별자리를 헤아리며 묻혀있는 고녕가야 역사를 찾는 것이 이 시점에서 우리 고장이 도약하고 지향해야 할 최선의 선택임을 말하고 싶다.

고령의 대가야와 구별하기 위해서 함창은 원래 발음대로 고녕가야로 표기했습니다.
 

[지정 스님 프로필]
 

1965년 경북 영덕 출생

1985년 문경 봉암사 출가

서암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

법주사 승가대학 졸업

실상사 화엄 학림 졸업

전국 선원 10하 성만

예천 장안사 주지(역임)

김천 직지사 교무 시무

) 봉천사 주지

상주문경매일신문 (smi37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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